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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이 밀어올린 임대료···성수동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 있을까

by N로즈지점장 2024.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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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디올·탬버린즈 등 인기 매장이 자리한 골목에 다다르자 한 매장 밖으로 늘어선 줄이 눈길을 끌었다. 이날부터 3주간 운영되는 뷰티브랜드 ‘멜린앤게츠’의 팝업스토어(짧은 기간 운영되는 체험형 홍보 매장)다.

노란색 화장품 박스를 형상화한 포토부스에선 젊은이들이 사진 찍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생 이모씨(23)는 “화장품을 직접 써볼 수 있고 여기서만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어 일부러 팝업매장에 왔다”고 말했다. 연무장길은 ‘팝업의 성지’로 불린다. 매주 새로운 팝업이 들어서면서 매장은 빠르게 교체되고 골목 일대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뀐다.

팝업 매장이 성수동의 젊은 이미지를 한껏 끌어올렸지만 그늘도 있다. 바로 임대료 문제다. 지난해 성수동 일대 상권 임대료는 1년새 30% 넘게 올랐다. 평당 수 천만원의 권리금이 붙는 것도 예사다.

새로운 국면 맞은 성수동 젠트리피케이션

 

성수동은 과거에도 젠트리피케이션, 즉 낮은 임대료로 장사하거나 거주했던 기존 원주민이 쫓겨나간 현상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2010년대 중반 성수동 서울숲길에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가 인기를 끌면서 이때도 임대료가 크게 뛰었다. 당시 성동구청은 서울숲길을 포함한 성수1가2동 일대 25만9518㎡를 상권 보호구역, 일명 ‘지속가능발전구역’(발전구역)으로 정했다.

이곳에선 프랜차이즈 매장 입점이 일부 제한됐다. 이와 별도로 성동구는 건물주와 임차인 간 임대료 협상을 중재해 과도한 인상을 막았다. 임대료를 낮추는 건물주에겐 당근책도 줬다. 2017년 5월부터 임대료를 물가상승률 수준에서 올리는 건물주에게 신·증축시 20~30%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2021년 성동구가 실시한 용역결과에 따르면 같은 해 상생협약 체결 건물의 임대료 상승률은 2.49%로 미체결 건물보다 0.36%포인트 낮게 나타나는 등 임대료 안정에 효과를 봤다.

 

한풀 꺾인 젠트리피케이션 우려가 다시 불거진 건 최근 들어서다. 성동구가 지정한 발전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곳에서 다시 임대료가 뛰기 시작했다. 연무장길 일대(성수2가3동)가 대표적인 곳이다. 3일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성수2가3동의 평당 임대료는 3분기 기준 21만446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15만7618원)에 비해 1년여 만에 33% 올랐다. 이 곳에서 사무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2년 전 8평 남짓한 사무실을 월세 150만원에 계약 맺었는데 올해 월세 300만원에 재계약 했다. 부담이 크다”고 했다.

일대 상가 자리도 평당 수 천만원의 권리금이 붙었다. 인근 중개사 B씨는 “한때 권리금이 붙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현재는 평당 2000만~3000만원의 권리금이 형성된 상태”라고 말했다.

우후죽순 들어선 팝업과 오피스…‘자본의 놀이터’ 된 성수동

 

업계에선 임대료 상승 주범으로 ‘팝업’을 꼽는다. 팝업은 넓은 공간이 필수적이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한 곳에 몰아넣고 다양한 물건을 전시해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성수동은 바로 이 점에서 팝업에 제격이었다. 동네에 즐비한 공장 부지가 개조되면서 넓은 전시 공간이 탄생했다.

팬데믹 종료 이후 업종을 가리지 않고 팝업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연말엔 성수동에서 한 주간 50개 넘는 팝업이 열렸다. 연무장길에서 팝업을 운영중인 한 브랜드의 매니저는 “유동인구가 많고 성수가 주는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팝업을 열 공간은 부족한데 자금력이 있는 기업들 발길이 이어지면서 팝업 임대료는 일대 상가의 월 임대료를 훨씬 웃돌만큼 치솟았다. 1~2주의 단기 임대 형식으로 운영되는 팝업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적용을 받지 않아 임대료 상승 폭에 제한이 없다. 인근 중개사는 “팝업 임대료가 일주일 기준으로 10평에 500만원, 20평대는 1600만원대”라며 “좋은 곳은 7월까지 예약이 다 찬 상태”라고 말했다.

오를대로 오른 단기 임대료가 전반적인 임대료 심리를 자극하면서 장기 임대료 상승도 견인했다. 중개사 C씨는 “임대료가 뻥튀기 되면서 다른 곳에서도 그만큼 올리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 이라고 말했다.

 

임대료를 끌어올린 데에는 지식산업센터 등 오피스도 한 몫 했다. 성수동은 대부분이 준공업지역으로 2010년부터 지식복합센터가 우후죽순 들어섰다. 성수가 젊은층이 많이 찾는 ‘핫플’로 떠오르면서 무신사를 비롯한 기업들 사옥도 들어섰다. 게임회사 크래프톤은 2021년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손잡고 연무장길 일대에 위치한 이마트 성수점의 토지와 건물을 1조2200억원에 사들인데 이어 지난해엔 서울숲역 인근에 위치한 메가박스스퀘어를 2435억원에 매입했다. 대지면적(3441㎡) 기준 평당 매입가만 2억3352만원에 달한다. 중개사 C씨는 “크래프톤이 이마트 건물을 평당 1억9000만원에 사니까 집주인들이 같은 금액을 부르면서 그 금액이 호가가 됐다”며 “이로 인해 떠밀려나가는 상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때 싼 임대료를 바탕으로 개성 있는 카페와 매장들이 들어섰던 성수는 결국 임대료와 땅값이 개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오르면서 자본가와 법인들의 놀이터가 됐다. 중개사 D씨는 “이 비싼 가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강남 등에서 온 외지인과 법인들 뿐”이라며 “성수동은 이제 개인이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일대에 터전을 이뤄온 수제화 매장 등 지역 업체들도 밀려나고 있다. 성수역 인근에서 30년 넘게 수제화 매장을 운영중인 이모씨(72)는 “그나마 재수가 좋아 착한 집주인을 만나 매장을 유지하고 있다”며 “피혁 업체와 구두 매장들은 건물주 채근에 못견디고 떠나 수제화거리에도 수제화가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상권 보호 구역 확대했지만 효과는 미지수

 

지난해 8월 성동구는 성수전략정비구역을 제외한 성수동 대부분 지역으로 발전구역을 확대했다. 성동구는 일대 상생협약과 이행협약의 체결을 늘리고 연구용역을 맡겨 대책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상생협약의 구속력이 없고 팝업 매장의 임대료를 제한할 방법도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다. 부동산 거래사이트 벼룩시장에 따르면 성수동에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적용 상한인 환산보증금 9억원을 넘는 매물이 전체의 20.4%(지난해 10월 기준)에 달한다. 제도적으로 보호 받지 못하는 매물이 많다는 얘기다.

성동구는 임차인의 영업권을 보호하기 위해 환산보증금제 폐지, 관리비 공개의무 신설 등을 담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자발 협약인 상생협약에 구속력·이행력을 확보해 위반 시 제제를 가하도록 하는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 개정도 촉구 중이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법안이 개정되면 임대료를 약간은 억누를 여지가 있지만 성수동은 시장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라며 “임대료를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고 성수동의 특성을 살린 점포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임대인에게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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